용서 비는 아버지

용서를 비는 아버지, 그 깊어진 어깨를 생각하며

 

 

어린 날의 아버지는 거대한 산과 같았습니다. 굳건한 어깨, 낮은 목소리, 때로는 엄격한 눈빛은 그 어떤 어려움도 막아줄 듯 든든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고 있는 듯했고, 우리의 작은 투정은 그의 넓은 품 안에서 눈 녹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어깨는 조금씩 굽어지고 목소리에는 옅은 떨림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굳건했던 눈빛은 때때로 흐릿해졌고, 완벽해 보였던 모습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와 무게를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도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을 겁니다. 서툰 날갯짓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우리를 지켜보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번민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려 애썼을 것입니다. 때로는 그 방법이 서툴러 오해를 낳기도 하고,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을지 모릅니다.

 

문득,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서툰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무뚝뚝한 말투 속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 표현은 못했지만 늘 우리를 걱정하던 눈빛, 어색한 미소로 건네던 작은 선물들. 그 모든 것은 아버지 나름의 사랑 표현이었을 텐데, 어린 날의 우리는 그 진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아버지도 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함과 고독함을 짊어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짊어진 삶의 무게만큼, 마음속에도 켜켜이 쌓인 후회와 아쉬움들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은 밤,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날의 과오를 곱씹었을지도 모릅니다.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말이었을까요. 굳어진 자존심,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감, 어쩌면 서툰 표현으로 인해 또 다른 오해를 낳을까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굽어진 어깨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 너머로 전해오는 아버지의 용서를 비는 마음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날들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용기를 낸 그 한마디 속에는, 이제라도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아버지의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화답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몫인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의 깊어진 주름, 그늘진 눈가, 조금씩 굽어지는 어깨는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 무게만큼이나 아버지의 마음속에도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의 그 깊어진 어깨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그의 진심을 헤아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그 굽어진 어깨 위로, 따뜻한 화해와 이해의 손길을 건넬 때, 묵묵히 짊어져 온 아버지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용서를 비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을 치유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