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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on't you say that?!/It's sad. so sad...

광주 체게바라 vs 광복절 물대포

by 진02 2013. 8. 16.
광주 체게바라 vs 광복절 물대포

 

 

 

 2013년 광복절, 광주에서는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행사가 있었다. 한편 서울에서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강제로 연행하는 정부(짭새)가 있었다. 과연 이들 중 누가 더 광복절에 어울리지 않는 짓거리를 했고 누가 더 잘못했다고 보는가?!

 

 8월 15일은 우리나라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광복절"이다. 남한과 북한을 떠나서 815는 우리민족을 탄압하던 일본에게 벗어나 독립을 맞이한 날이기 때문에 그 의미는 단 하나이다. 즉 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그것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맞이한 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체게바라의 정치성향이 공산주의였다는 정치노선의 선택을 떠나서 그의 혁명정신과 독립정신은 우리의 광복절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정치성향이 어떻든 주적이었던 일제를 우리나라 땅에서 물러나게하고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 먼저라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체게바라를 논쟁의 중심에 잡고자 한다면 그의 혁명정신보다는 오히려 그의 정치성향에 촛점을 맞추는 멍청한 생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체 게바라(공산주의 혁명가) 티셔츠' 입고 광복절 기념공연

 

 15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제68주년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광주시립소년소녀 합창단이 남미의 공산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공연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애국지사와 광복회원,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절 행사가 열렸다. 기념식 중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48명이 흰색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올라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어 '광주는 빛이어라'(고은 작시)라는 공연을 시작하면서 흰색 저고리를 벗어 체 게바라 얼굴이 새겨진 검은색 티셔츠를 5분간 드러냈다. 합창단 공연은 총 10분간 진행됐다.

 

 

[각주:1]

 

 

 

 

광복절은 우리가 일본의 탄압과 억압에서 벗어난 날을 의미하고 자유와 권리를 되찾은 뜻깊은 날이다. 때로 정부에서 길을 막고 행사를 하기도 한다. 또한 시민들도 때로 길을 막고 행사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적인 성향을 띈다고 시민에게 물대포를 쏘고 그들을 강제로 연행까지 해간다면 그들은 정말 대한민국의 경찰인가?

 

누구나 정치적 성향은 다를 수 있고 그 정치적 성향을 포현하는 방법도 다를 수 있다. 그것을 꼭 정치적으로 합법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합법적인 보이콧내지 시민불복종이 있는가하면 불법적인 보이콧내지 시민불복종의 형태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2002년 월드컵 당시의 거리의 행진은 정치적 성향이 없어서 합법적이라고 한다는 것은 너무 옹색하기까지한 변명처럼 보여질 뿐이다.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정치적인 독립과 자주를 의미하는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생을 떠난 각종 시민단체의 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선에서 질서를 유지하고자하는 것이 올바른 정부의 행동이라고 본다. 그들에게 물대포까지 쏘면서 강제연행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아직 진실에 대한 시시비비가 밝혀지지 않았고 논쟁 중에 있고 언론은 침묵하기에 그들의 시위에대한 물대포와 강제연행의 의미는 더욱 개탄스럽다. 이것이 내가 체게바라의 혁명가적 정신이 공산주의자인 것보다 높이사는 이유가 맥을 같이 할 것이다.

 

 

 

 

물대포에 300여명 연행까지..국정원 규탄 시위 '강경진압'

 

광복절인 15일 낮에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잇달아 벌어졌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 가운데 300여명을 연행하고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는 등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소속 5000여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 350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광복 68주년 기념 8·15 평화통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오후 1시께 "국정원 규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각주:2]

 

 

 

결과론적 측면에서는 본다면 체 게바라는 분명 공산주의자일 수 있다. 하지만 과정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독재정권에 항거하고 붕괴시킨 시대의 혁명가다. 어느 것에 주안점을 두느냐는 각자의 판단과 가치관의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의 광복절 행사에 누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작은 소견이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티셔츠는 눈에 불을 켜고 볼 수 있으면서 그의 혁명정신과 독립정신은 보지 못하는 그대의 속좁은 아집이 부끄러울 뿐이다.

 

 

 

 

체 게바라는 누구인가?!

 

 

출처 : (위키백과) 링크 - http://ko.wikipedia.org/wiki/%EC%B2%B4%EA%B2%8C%EB%B0%94%EB%9D%BC

 

 

 

혁명가

 

   1956년 11월 25일, 피델 카스트로를 반군 지도자로 하여 총 82명이 8인승 레저 보트 "데셈바르코(그란마)"에 탑승하였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이 타서 위생 등의 환경이 열악하였다. 또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폭풍 속에 출발했기 때문에 7일 후 12월 쿠바에 도착했을 때 많이 지쳤고, 사기도 떨어져 있었다. 반군의 상륙 계획을 카스트로가 미리 발표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이 쿠바 정부에 유출되어 반란군은 도착 직후부터 정부군의 습격을 받아 괴멸 상태가 되었다. 결국 살아서 도착할 수 있었던 사람은 82명 중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라울 카스트로,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루이스 크레스포, 호세 모얀, 훌리오 디아즈, 카리스트 가르시아, 카를로스 베르데무스 등 12명뿐이었다. (생존자가 17명이라는 설도 있다.)

 

 당시 카스트로는 혁명에 실패하여 감옥살이를 했었는데, 재판 당시 피델 카스트로는 판사 앞에서 <역사가 나중에 나를 다시 평가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한다. 체 게바라등의 동지들의 참여로 다시한번 혁명에 도전하여 친미성향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붕괴시킨다.

 

 상륙 후, 반군은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 잠복하여, 산골 마을을 전전하면서 군 재건을 도모했다. 이후 쿠바 국내에서 활동하던 반정부 세력과 합류에 성공하여 반군 세력은 점차 강화되어 갔다. 당초 부대에서 게바라의 역할은 군의관이었지만, 혁명군의 정치 방송을 하는 라디오 방송국(라디오 레베르데)을 설립하는 등 정부군과 전투에서 그 인내심과 성실, 상황 분석, 냉정한 판단력,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점차 반군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도착 1년 후 병력 증가에 따른 부대 개편 시, 카밀로와 라울 등을 그대로 두어, 카스트로부터 제 2군(이름은 제 4군) '코만단테'(사령관, 지휘관 아래에 분대와 분대를 지휘하는 "대장"이 있다)에 임명되어 지휘권과 소령의 계급을 받아 카스트로에 이어 명실상부한 반군 이인자가 되었다.

 

 1958년 12월 29일에 제 2군을 이끌고 쿠바 제 2의 도시 산타클라라에 돌입한다. 많은 시민의 가세로 적들을 제압하고 수도 아바나로 가는 길을 열었다. 1959년 1월 1일 오전 2시 10분 후 르헨시오 바티스타가 도미니카 공화국에 망명하자, 1월 8일 카스트로가 아바나에 입성하여, 쿠바 혁명이 달성되었다. 투쟁적인 업적과 헌신적인 작업으로 쿠바 시민권을 부여받아 쿠바 새 정부의 각료가 되기에 이르렀다.

 

 

 

평가

 

 체 게바라는 사후에 전 세계적으로 '체 게바라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아르헨티나 의사의 자리를 버리고 전 아메리카의 쿠데타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혁명에 뛰어들었으며, 쿠바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도 이를 박차고 또 다른 혁명을 위해 헌신하는 숭고한 모습이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 게바라가 쿠바, 콩고, 볼리비아에서 벌인 일련의 혁명과정에서 반혁명 세력과 수많은 농민들의 피해를 가져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당시 쿠바에 살았던 사람들이 체 게바라를 ‘아바나 백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주장도 있다.

 

 

 


 

 

 

 

 

  1. 기사 원문 및 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0816031311434 [본문으로]
  2. 기사 출처 및 원문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0815213007711 [본문으로]